이번 앨범의 첫 녹음 날이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압구정역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안 돼 있었다. 5-9-3호선을 통해 갈까, 5-3호선을 통해 갈까 고민하다 5-3호선을 택했다. 출근시간에 살짝 비껴나있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9호선은 부담스러웠다.
압구정역에 도착해서 단편선씨를 기다렸다. 잠은 3시간 정도밖에 못 잤지만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첫날이라 의욕이 넘쳐서 그런 걸까. 아침에 자는 습관을 이참에 좀 고치고 싶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설 연휴가 관건이다. 다시 원래의 시간표로 돌아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녹음실에 가기 전 맥도날드에 들렀다. 나는 맥모닝을 먹고 단편선씨는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단편선 曰 "내가 주변에 용성씨 음악을 들려줘봤는데, 평가가 갈리더라고요."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아주 좋아하는 반면, '이런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평범하다거나, 식상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평범하다는 의견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납득할 만 했다. '평범'이란 '트렌디'하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타이틀 곡을 정하기 전에 여기저기 들려주고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오늘은 상처의 기타와 보컬을 녹음할 계획이었다. 내가 연주하고, 노래해야 했기 때문에 오퍼레이팅은 단편선씨가 해야 했다. 단편선 씨에게 프로툴 조작법을 설명했다. 직접 프로툴을 조작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동안 녹음하면서 보아왔던 게 있던지라, 쉽게 쉽게 익혀 나갔다.
부스에 들어가기 전, 키와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날 집에서 이런 저런 톤과 키로 녹음을 해봤는데, 데모 녹음을 했던 원 키에 입을 최대한 오므리고 대충 부르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입을 벌리면 벌릴 수록 가슴에서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나면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았다. 단편선 씨 앞에서 어제 나의 고민을 요약해서 선보였다. 단편선 씨도 동의했다.
기타를 들고 부스에 들어갔다. 마이크 위치도 단편선씨가 직접 조정했다. 이어폰을 끼고 그 위에 다시 헤드폰을 덮었다. 편성이 단촐한 노래라 메트로놈이 새면 곤란했다. 전날 낮에 기타 줄을 갈았는데, 1번 줄이 자꾸만 풀려서 밤늦게 다른 줄로 다시 갈았다. 나일론 줄은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조율이 틀어질까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단편선 씨와 녹음은 처음이었다. "될 때까지 한다"고 으름장을 놓아서 조금은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편하게 진행됐다. 복붙 없이 전 구간을 모두 연주했다. 앞에서부터, 서너 마디, 두세 마디씩 완성해 갔다. 왼손 운지가 쉽지가 않은 편이라 고생을 했다. 코드를 변경하는 부분, 슬라이드가 있는 부분에서 끊어 갔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렸을까? 기타 녹음을 끝내고 점심을 먹었다. 단편선 씨는 오전 기타 녹음을 하면서 인스타 라이브를 진행했다고 한다.
노래 녹음은 기타 녹음보다 어려웠다. 입을 오므리고 부르니 발음이 좋지 않았고 숨이 모자랐다. 한숨으로 불렀으면 좋겠는 구간인데 숨이 달려서 한숨에 부를 수가 없었다. 숨을 쉬면서 가자니 숨소리가 거슬리고 박자가 틀어졌다. 나는 나눠서 불러서 잇기를 원했고, 단편선씨는 자연스럽게 가는 것을 원했다. 단편선씨의 의견대로 갔다.
노래를 녹음하고 나와서 컨트롤룸에서 함꼐 들어보며 더블링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상의해보았다. 단편선씨는 센터에서 살짝 밑에 깔리는 식으로 더블링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위상이 틀어지는 느낌 때문에 더블링을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레벨을 낮춰서 들으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구상은 단편선씨의 머리 속에 있으니 단편선씨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공은 적을 수록 좋다.
내 머릿속에는 그런 구상이 없었다. "구름 위를 걸어가는 듯이"라든지, "산굼부리가 느껴지게" 같은 것들이 내게는 없다. 주어진 보기가 있을 때 고르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아무 보기도 없을 때, 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잘하지 못한다. 프로듀서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작곡가의 머릿속에 구상이 있을 때 그걸 음악적인 표현으로 번역해주는 일이고, 하나는 아무런 구상이 없을 때 그런 구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블링 보컬까지 녹음하고, 코러스를 녹음했다. 코러스는 단편선씨가, 총 두 가지 라인으로 네 트랙을 녹음했다. 코러스는 어디까지나 가이드고, 음정 보정을 다 마치고 난 뒤, 나의 목소리로 다시 부를 계획이었다. 단편선 씨가 어떠냐고 물어봤다. 나는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했다. 단편선씨는 어딘가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녹음을 끝내니 5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단편선씨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먼저 갔고, 나는 녹음실을 정리하고, 데이터를 백업하고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