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4일에 녹음을 했고, 2월 5일에 글을 썼다.

어제는 '나무'를 녹음했다. 설 연휴 중에도 한 번은 녹음하자는 단편선 씨의 의견을 따라 월요일에 약속을 잡았다. 이천에서 한 시 버스를 탔다. 압구정역 근처에 있는 녹음실에 도착하니 두 시 반쯤 되었다. 스타벅스를 들러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한 잔 샀다.

집에는 친구를 보고 온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음반을 만들고 있는 걸 알지 못한다. 몇 달 전 아빠가 아직도 음악을 하냐고 물어서 이제는 안 한다고 답했다. 근황을 가장 잘 아는 건 오히려 조카들이다. 말해준 적도 없는데 음악을 찾아 듣곤 김일성이 언제 죽었는지 같은 걸 물어본다. 그렇지만 조카들에게도 '음반'을 만든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여러 가지로 설명할 것들이 많아진다. 애들은 '음반'이 뭔지 모를 수도 있다.

약속은 5시 반이었다. 그전까지 ‘김일성이 죽던 해’의 기타를 편집했다. 박자를 맞추고, 틀린 부분, 잡음이 들어간 부분을 잘 녹음된 부분으로 대체했다. 쓰리-핑거 연주는 이어지는 음들이 많아 편집하기가 어렵다. 포크는 어느 정도 틀리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단편선 씨의 의견에 따라 칼 같은 편집은 하지 않았다. 심한 부분만 약간씩 수정했다.

비단종 씨는 5시 반쯤 왔다. 비단종 씨의 섭외는 꽤 오래전에 이뤄졌다. 나는 성별을 콕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은 목소리를 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단편선 씨가 몇 주 뒤 비단종 씨의 곡 ‘전국체전’을 들려주며 의견을 물었다. 나는 별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사실 비단종 씨가 ‘나무’를 부르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곡을 쓰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뭐가 됐든 잘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전국체전’은 그만큼이나 좋고, 재밌는 곡이다.

비단종씨는 지난주에 처음 만났다. 압구정 역 근처에서 만나 ‘브라운 돈까쓰’를 먹으며 이번 음반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다. 비단종 씨는 데모 중 '작은 이모'가 특히 좋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빠지게 된 곡이다. 밥을 먹고 근처 편의점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향후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설 연휴 중 하루를 잡아 만나고, 녹음실에서 조금 맞춰보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바로 녹음을 해버리자, 하는 게 약속의 내용이었다.

10분쯤 지나고 단편선 씨가 왔다. 짐을 풀고, 식사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했다. 버거킹을 주문하고, 그 사이에 여러 가지를 정했다. 단편선 씨가 데모를 들으며 코드를 땄다. 카피한 코드에 맞춰서 노래를 불러 보며 키를 정하고, 어떤 스타일로 부를지를 정했다. 비단종 씨는 이 노래가 샹송 같다고 말했다. 단편선은 이 노래를 프렌치 팝처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별로 의견이 없었다. 두 사람이 얘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식사를 하고 — 단편선 씨는 새우와퍼주니어를, 나는 콰트로치즈와퍼주니어를, 점심 식사를 늦게 한 비단종 씨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메리카노는 조금 식어 있었다. — 기타 녹음을 했다. BPM은 74, 단편선 씨의 마틴 기타를 사용했다. 막 다룬 기타의 소리를 원해서 본인의 기타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전기기타로 녹음할지 통기타로 녹음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곡 제목이 '나무'니까 '통기타'가 어울리지 않겠냐는 비단종씨의 말에, 알게 모르게 설득당해 버렸다. — 근데 생각해보면 일렉기타도 나무로 만든다. 왠지 속아버린 느낌이다. — 기타 녹음에는 20분쯤 걸렸다. 전체 곡을 두 테이크 정도 녹음하고, 몇 부분 수정했다.

기타 녹음할 때, 코드를 하나 잘못 친 게 있었다. 나는 몰랐는데 비단종 씨가 알려줘서 알았다. 나는, 내 노래긴 하지만, 무슨 코드를 썼는지도 잘 모르는 데다, 음감도 좋지 못해서 이런 데는 영 둔하다. 비단종 씨가 없었다면 아마, 어어,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음악가로서는 조금 중대한 결함인 듯싶다.

비단종 씨가 노래를 하러 들어가기 전 요구사항 몇 개를 전달했다. 어디서 어디까지는 한 숨으로 불러달라든가, 이 부분은 이렇게 발음해달라든가 하는 정도. 노래 녹음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두세 테이크 정도 녹음을 해보고, 몇 군데를 수정했다. 컨트롤룸에서 다 같이 들어보면서, 추가로 수정할 곳을 몇 군데를 정하고, 코러스를 어떻게 쌓을지 정했다. 그리고 다시 녹음

비단종 씨 녹음은 단편선 씨가 직접 했다. 이번 녹음을 시작하면서 간단한 프로툴 오퍼레이팅을 배웠는데 이제 꽤나 능숙해졌다. 나 같은 경우는 손동작은 빠를 지라도, 노래를 잘 이해 못해서 버벅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단편선 씨 같은 경우 노래를 잘 이해하다 보니, 손은 좀 느려도 오히려 나보다 더 수월하게 오퍼레이팅을 하는 것 같다. 아티스트랑 의사소통도 더 쉽고.

녹음은 9시쯤 끝났다. 나는 10시 차를 타고 다시 이천으로 내려왔다. 녹음 중에 조카한테 전화가 왔는데 받지를 못했다. 버스에 타서 전화를 했다. 엄마는 집에 내 가방이 없어서 서울로 영영 가버렸나, 하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서울 간다고 하면 이런 것 저런 것을 물어볼 것 같은데, 거짓말은 하기 싫으니까 적당히 둘러 댄 것이었다.

집에는 11시 20분쯤 도착했다. 어제는 자기가 삼촌과 같이 자겠다며 소리치던 애들이 오늘은 각자 할머니랑, 엄마랑 자겠다고 했다. 둘째 조카는 나한테 “삼촌은 오늘 쓸쓸히 혼자 주무세요”라고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