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후배가 있었다. 당시 자주 만나던 친구에게 후배의 근황을 물었다. 요즘 이런저런 고민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래서 연락이 잘 안 된다. 그 날 저녁 집에서 기타를 만지작거리다 괜찮은 진행을 발견했고 진행에 맞춰 그 날 들은 이야기 ― 힘들어서 어디론가 떠난 사람의 이야기 ― 를 붙였다.

코드가 마음에 들어서 쓴 곡이다. 매일 쓰는 코드나, 주법들에 질리고 있었다. 개방현을 사용하는 코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타에 맞춰서 Verse의 멜로디를 썼고, 멜로디에 맞춰 Chorus의 코드를 썼다. Chorus는 운지가 다소 부자연스러운 코드로 구성되어 있다. 연습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조금 쉬운 모양으로 바꿔볼까 시도해봤지만 곡의 억양이 바뀌는 바람에 포기했다.

이 곡에는, 다른 곡들과 다르게, 이야기가 없다. 힘들어하는 '나'가 등장하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왜 힘들어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처를 대하는 태도만이 있다. 괜찮아. 위로하지 않아도 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조금만 쉬면 다 괜찮아 질 거야. 기다려 줘.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이 가져야 할 교양, 혹은 예의 바른 무관심에 대한 곡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다뤄줬으면 하는 방식에 대한 곡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잔다. 기분이 상했을 땐 잠시 연락을 끊는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기간을 대략 정해서 "2주 동안 연락하지 마"하는 식으로 통보한다. 잠 한 번 자고 나면 화는 대개 풀린다. 2주는 상징적인 기간이다. 누군가를 딱히 미워하지도 않는다. 꽤나 싫어했던 체육 교사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니네가 욕 해도 신경 안 써. 니네가 나 미워해봤자 니네만 스트레스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 말을 듣고는 미워하기를 관두어 버렸다.

그렇다는 건, 누가 내 화를 풀기 위해 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딱히 노력해도 내 화를 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장은 마음이 누그러질 수도 있겠지만 끝은 나지 않는다. 시간과 잠이 필요하다. 시간과 잠만 있다면, 어찌 됐든 상관없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얼마 후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갈등을 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대화는 대개 말싸움으로 번진다. 결론 없이,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으로 대화는 끝난다. 간격은 상처가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을 들춰 내 굳이 확인하곤, 못내 섭섭해 한다. 나는 도망을 선택한다. 밑바닥을 보고 싶지 않다. 거리를 확인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먼지는 가라앉는다. 맑게 뜬 물만 요령껏 마실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가을에 발표되었던 적 있는 노래다. 연주나 가창, 녹음 상태 모두 발표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는 뭐라도 내고 싶었다. 몇 년 뒤 부끄러워서 내렸던 걸 이번에 다시 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