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반쯤 압구정역에 도착했다. 스타벅스에 들러 자몽 피지오를 샀다. 자몽 피지오는 맛있지만 양이 너무 적다. 크게 몇 번 빨면 금세 동이 난다. 녹음실에 도착했을 땐 얼음만 남아있었다. 종이 빨대를 개발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할까 상을 받아야 할까?

녹음 준비를 했다. 마이크는 여느 때처럼 U87을 사용했다. 프리앰프는 P2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9098을 연결했는데 잡음이 조금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 변경하였다. 일단은 서서 부를 수 있게 스탠드를 높이 뽑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기억 보존을 위해 일단은 빼놓지 않고 적는다.

단편선씨는 여섯 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회사원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평소 메고 다니는 에코백 대신 가죽 서류가방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제품을 발라 굳힌 머리가 눈에 띄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클라크 켄트를 닮았다. 목표로 하는 공정률 97%를 맞추기 위해 4월엔 평일 저녁에도 녹음을 하기로 했다.

스트렙실 오렌지트로키를 입안에서 굴렸다. 트로키란 '입에서 천천히 녹아 입안이나 인두에 적용하는 입안용 알약(네이버 국어사전)'이다. 약 상자에 들어있는 첨부 문서를 주의 깊게 읽었다. 스트렙실은 3~6시간에 1개씩 성인이 1일 최대 5개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며칠 전 식도염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부끄럽지만, 노래를 불러야 하니 목-약도 추가해 달라고 말했다. 처방받은 것은 진해거담제 '시네츄라시럽'이다. 시럽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고 죽염 가글을 몇 번 했으나 큰 차도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스트렙실로 돌아왔다.

부스로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 정도 부르고 본 녹음을 시작했다. "얇은 벽 한 칸을 사이에 두고~"부분이 마음에 들어 그때의 톤으로 앞뒤를 불렀다. 후렴 부분에서 살짝 애를 먹었다. 살짝 높아지는 부분이라 원하는 톤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실시간으로 목 상태가 변했다. 첫 트랙 녹음이 끝날 때쯤엔 목구멍의 왼쪽과 오른쪽의 감각이 달랐다. 스트렙실을 하나 더 먹고 더블링 트랙을 녹음했다. 복약지도를 준수하지 읺았다. "이 약을 포함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위 또는 장관의 출혈, 궤양 및 천공을 포함한 중대한 위장관계 이상반응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이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코끼리를 마취 시킬 땐 더 큰 마취약이 필요한 것이다.

단편선씨가 코러스를 불렀다. 나무의 기타 솔로를 다시 녹음했다.

삼각지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른 낮에 얼그레이 잼 바른 토스트를 먹고 배가 찰 만한 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9시부터는 금식하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어겼다. 단편선씨가 사왔던 슈웹스를 먹으며 이동했다. 닭은 황태처럼 질기고 푸석했다. 해물누룽지탕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