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봄에 쓰기 시작했다. 벚꽃이 필 무렵이었다. 쉬는 시간 층계참에서 창밖을 구경하던 것을 기억한다. 분홍 나선이 고구동산을 감싸고 있었다. 사회조사방법론을 듣던 중이었다.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무엇이 되지 못한 것들 때문에. 주제 없는 말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막을 수도 꿰어 낼 수도 없었다. 머리로 부르던 노래를 쉬는 시간에 받아 적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풀을 뽑고 돌을 골랐다. 자라는 풀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집요하고 거대하다. 좀비가 채식하지 않는 까닭은 둘이 근연종인 데에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선수처럼 풀은 소리 없이 다가온다. 불안도 풀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풀이 곧 불안인 탓이다. 고엽제는 신경증의 산물이다. 친구 없는 친구 집에서, 집에 갈 채비를 하며 후렴의 앞부분을 썼다.

뒷부분은 한참 나중에 썼다. 영등포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친구가 화를 냈다. 그는 몇 달 전 새벽 신림에서도 화를 냈다. 넉살 좋고 의리 있지만, 별안간 그렇게 화를 낸다. 정서는 아날로그지만 그곳만은 디지털이다.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스위치가 켜진다. 주변은 항상 말리기 바쁘다. 그런 식으로 화내는 사람이 종종 있다. 무엇이 그렇게 분한지 핏발 선 눈이 하염없이 떨린다. 제 몸을 투척하고 기물을 파손한다. 풀과는 다르게, 현실적인 위협이다.

내가 자란 이천은 깡패새끼와 새끼깡패들이 우글대는 곳이었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이었다. 소집일 날 학교 앞에서 새끼깡패와 어깨를 부딪쳤다. 골목도 아닌 곳에 끌려가 경찰이 올 때까지 뺨을 맞았다. 녀석은 나와 동급생인 더 어린 깡패를 불러내어 '관리'를 똑바로 할 것을 당부했다. 그해 봄 나를 때리던 선생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다. 그리곤 자기도 군 출신이라며 때리기를 갑자기 그만두었다.

멀어진 사람들이 생각 '된'다. 내게 학을 뗀 사람들. 마주칠 기회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상처 줬던 일과 말이 이따금 다시 떠오른다. 그럼 그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 망상이 조용히 상영된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래도 계속된다. 그때 그 순간, 그보다 별로 일 수 없던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가끔은 알파고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