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학개론 마치고 서울여대에서 출발했다. 18시 14분이었다. 단편선씨는 회사 일 때문에 늦는다고 했다. 도마씨가 우리 중 가장 빨랐다. 압구정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녹음실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동석을 권유받았지만 부끄러워서 거절했다. "아뇨, 식사는 괜찮습니다. 드시고 오셔요 ㅎㅎ". 그리곤 배가 고파서 델리만쥬를 사 먹었다. 그것을 들고 열차에 오르니 테러범이 된 기분이었다.

녹음실 도착 직전이었다. 사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녹음실 소독했거든? 문 열어보고 냄새 이상하면 환기 좀 시키고 들어가". 별안간 무서워졌다. 나와 단편선과 도마씨가 하나씩 정신을 잃는 모습을 상상했다. 녹음실 문을 열어 적벽돌로 고정해 놓고, 맞은 편 까페 '애즈도...'로 갔다. 가게의 정확한 이름은 'As though I had wings'다. 커피와 자몽에이드를 주문했다. 가정법 과거랑 과거완료랑 어떻게 다른 것이었는지, 이곳을 갈 때마다 매번 궁금해한다. 찾아보지는 않으면서.

어느새 도착한 도마씨와 까페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도마씨와는 거의 1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작년 여름밤, 합정역 인근에서 '닭구이'를 먹은 게 마지막이었다. 그때 도마씨는 진한 녹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녹음실의 정체, 제작이 연기된 사연, 단편선씨의 작업 스타일, 나의 작곡 방식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마씨는 내게, 스스로 쓴 곡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말했다.

녹음실로 들어갔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나서 무서웠다. 벽에 스며들어 있던 담배 냄새가 많이 빠진 것 같았다. '흡연 가능'은 이곳을 찾은 음악인들이 입 모아 칭찬하는 것 중 하나이다. 도마씨는 제비다방 녹음실과는 다른 모양이라며 신기해했다. 연습 삼아 불러 보고 있을 때 단편선씨가 왔다. 부스에서 근황을 나누다 녹음을 시작했다.

톤을 잡는 과정이 꽤 길었다. 단편선씨는 여러 요구를 했다. "내가 노라 존스다, 생각하고 한번 해볼래?", "약간, 고급스러운 재즈를 부른다는 느낌으로 해볼래?", "될 때까지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살짝 허세를 넣는다는 느낌으로 할까? 살짝 과장된 것처럼?", "이소라의 '청혼'을 부른다는 느낌으로 해봐" 등등. 정리된 최종 요구는 "도마처럼 불러"였다.

〈대설주의보〉의 브릿지 부분을 도마씨의 목소리로 녹음했다.

튀긴 닭을 먹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