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 40분 경, 녹음실 앞에 도착했다. 강서구에 있는 집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왔다. 단편선씨, 베이스 선수 정수민씨와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두 개의 녹음이 예정되어 있었다. 3시에는 콘트라베이스 녹음, 7시에는 피아노 녹음. 일정표 공유에 혼선이 있어서 큰 지각을 해버렸다. 수민씨가 너그럽게 이해해주셔서 다행이었다.

바로 녹음을 하지는 못했다. 녹음실을 7시로 잡아 놓고 3시에 온 탓이다. 컨트롤룸이 다소 어지러웠다. 야마하 NS10M스피커와 Alesis파워앰프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고, Dynaudio社의 스피커는 콘솔 뒤쪽에 나란히 서 있었다. 콘솔 위에는 녹음실에선 쓰지 않는, PC용 스피커가 놓여있었다. 불길한 모양새였다. 사장님이 씻고 나오시길 기다렸다.

7시에 중고거래가 있으니 그때만 잠시 비켜주면 된다. 작은 스피커는 40만 원에, 큰 스피커는 150만 원에 판다. "네가 살래?" 반농진농. "저는 돈이 없어요"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가 일하던 2012년에는 이 정도로 손님이 없지는 않았다. 내게 딴 길을 찾으라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장님은 자신의 말이 맞아서 기쁠까, 슬플까. 유물 위에 앉은 이끼가 된 기분이었다.

단편선씨가 기타를 들고,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베이스 선수 앞에서 베이스를 치는 일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했다. 그 앞에서 기타를 치는 내 마음과 비슷할까. 수민씨가 부쓰로 들어갔다. 언제나 그랬듯 U87과 P2를 사용해서 받았다. F홀과 새들 사이에 마이크를 댔다. 첫 탄현에 입이 벌어졌다. "녹음 안 했으면 어쩔뻔 했어?" 우리는 돈을 아끼기 위해, 나일론 기타로 연주한 라인을 한 옥타브 내려서 쓸까도 고민했었던 것이다.

녹음이 끝났다. 지각시간을 포함해도 2시간이 지나지 않은 떄였다. 단편선씨는 이렇게 빠르고 만족스러운 녹음은 없었다며 수민씨를 칭송했다. 수민씨는 오히려 살짝 불안(?)한 기색이었다. 혹시 연주할만한 다른 곡이 없냐며, 수민씨가 먼저 물어왔다. 예정에 없던 〈나무〉까지 녹음하고도 시간이 남아, 〈김일성이 죽던 해〉의 박수까지 녹음했다.

수민씨가 떠나고 지완씨가 왔다. 파파존스를 먹었다. 두 판 중 하나는 더블치즈버거라는 이름의 제품이었다. 너-어-무 맛있어서 그것만 다섯 조각은 먹었다. 대설주의보 녹음 때도 파파존스를 먹었었다. 지완씨가 있는 곳엔 파파존스가 있다. 가끔 지완씨를 생각하며 곡을 써야겠다. 지완씨는 검은 벙거지에, 황토색 화분 색깔의 바지를 입고 왔는데, 그게 또 너-어-무 멋있었다. 나도 저런 의상이 어울리면 좋을 텐데.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부러운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았다.

〈김일성이 죽던 해〉 아웃트로에 있는 솔로를 먼저 연주했다. 2분 정도 되는 길이의 솔로를 15번 연주했다. 왼손과 같이, 왼손 없이, 낮은 데서, 높은 데서, 틀리지 않게, 틀리게, 이상하지 않게, 이상하게. 솔로가 끝나고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엄마는 일요일부터 열이 난다고 했다. 앞부분은 단편선씨가 받았다. 건반은 지완씨의 노드일렉트로를 사용했다. 여담이지만 지완씨는 이날 키보드 스탠드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고철 줍는 사람이 가져갔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녹음이 몇 개 더 남아 있었다. 단편선씨는 집에 택배를 받으러 가야 해서 마음이 조급했다. 냉동식품을 받아서 냉장고에 넣을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재빨리 전역을 앞두고의 기타와, 사기꾼의 드럼을 받았다. 사기꾼의 드럼은 1대의 마이크로 받았다. 피크가 떴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지완씨는 사기꾼에 관심을 보였다.

단편선씨는 집에 가서 택배를 받고, 나는 녹음실을 정리한 뒤, 이태원에 있는 세달에서 모이기로 했다. 녹음실 정리하고 나왔는데 바로 앞에 '타다' 차량이 있었다. 재빨리 호출하면 이걸 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얼른 호출했는데, 눈 앞의 차는 떠나고, 13분 거리에 다른 차가 배차되었다. 10분을 기다렸는데도 10분이 남아있어서 결국엔 취소해버렸다. 택시를 타고 세달에 갔더니, 집에 간다던 멋진 벙거지의 사내가 그곳에도 있었다. 나는 맥주 두 잔을 마셨다.

*'반농진농'은 예전에 누군가가 했던 말실수다. 어딘가 이상하지만 따져보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런, 뭔 말인지는 어쩄든 알아먹는 그런 말이다. 언젠간 써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다. 드디어 써서 기분이 좋다.